콘텐츠로 건너뛰기
» 모든 사람에게 애교 많은 연인, 나만 특별하지 않다면?

모든 사람에게 애교 많은 연인, 나만 특별하지 않다면?

“웅~ 그랭ㅎㅎ”, “넹~ 알겠어용! ☺️”

이런 말투, 귀엽고 다정하죠. 애교 섞인 말투는 보는 사람 기분도 좋아지게 만듭니다. 문제는, 그 말투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때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 조심스럽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제 여자친구가 모든 남자에게 귀엽고 다정한 말투를 써요. 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느껴지는데, 이걸 말하면 제가 속 좁은 남자처럼 보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말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연인 사이의 경계선, 표현의 독점성, 그리고 사랑의 방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투는 감정의 표시일까, 단순한 습관일까?

“나는 원래 이렇게 말해~”

많은 사람들이 말투를 성격의 일환으로 여깁니다. 사람마다 고유한 말투가 있고, 그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죠. 단지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말투가 더 자주, 더 눈에 띄게 드러나게 되었을 뿐입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말투 자체가 개인의 브랜드처럼 기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말투가 특정 이성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유발하거나, 파트너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귀여운 말투는 ‘친절함’이 될 수 있습니다. 다정함이 ‘모두에게 향할 때’ 연인만의 특별함은 흐려지죠. 그 말투가 나와 너 사이의 ‘암호’였는데, 이제는 누구와도 공유되는 공용어가 되었다면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 vs “특별한 존재”

애인이 모든 이성에게도 ‘웅ㅎㅎ’, ‘좋아용~’ 같은 말투를 쓴다면, 나는 어떤 존재로 남게 될까요?

사랑은 차별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만 보여주는 웃음, 말투, 리액션에서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게 사라지면, 연애는 우정과 구분되지 않는 감정적 평면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말투 가지고 뭐라 하지 마”는 말투보다 더 아픈 말

“그 말투가 불편해.” “오해받을 수도 있고, 나는 상처받아.”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말투 가지고 왜 그래?” “그건 네가 예민한 거야.”

이런 반응은 말투보다 더 상처가 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소하지 않으며, 그것은 관계 안에서 존중되어야 할 감정의 신호입니다.

연애란, 나 하나만 편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불편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나를 조절해가는 연습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물론 모든 감정 표현에 제한을 둘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건 연인과의 영역에서만 사용하고 싶다’는 감정의 경계선은 누구나 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투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쓰이는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트너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조율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넌 그런 말투가 편할 수 있지만, 나는 그걸 들으면 우리만의 특별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속상해.”

이런 식의 대화는 비난이 아닌 감정 중심의 표현으로, 관계를 지키는 언어가 됩니다.

결론: 정답은 없지만, 선은 있습니다.

귀여운 말투를 쓰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계에는 ‘경계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선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조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때로는 독점적이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되지 않는 사랑은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감정은 섬세하지만, 자존감은 그 섬세함을 지켜주는 울타리일지도 모릅니다.

말투 하나에도 특별함을 담을 수 있다면, 그건 연애가 주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