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잡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장르와 스타일, 콘텐츠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비 행태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2025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인 ‘옴니보어(Omnivore)’는 바로 이처럼 다양성과 혼합성에 대한 감각적 탐닉을 뜻합니다.
옴니보어란?
‘Omnivore’는 원래 생물학 용어로 ‘잡식성 동물’을 의미하지만, 트렌드 키워드로서의 옴니보어는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제 우리는 음악, 패션, 음식, 여행은 물론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도 경계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특정 장르를 고집하며 자신의 취향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 멋으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오로지 클래식만 들어”, “북유럽 감성 아니면 싫어” 같은 식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오늘은 재즈를 듣고, 내일은 트로트를 즐기며, 침실에는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을 적용하고, 옷장은 코어한 Y2K 스트릿으로 채우는, 그런 다중취향 소비자가 대세입니다.

왜 옴니보어가 중요한가?
이러한 트렌드는 단순한 취향의 다양성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기존의 고정된 정체성과 위계를 거부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나답다’는 말조차도 복수형으로 존재합니다.
OTT 콘텐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왓챠 등 다양한 플랫폼은 옴니보어 소비자들의 욕망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습니다. 아래 세 가지 사례는 이 트렌드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OTT 속 옴니보어 트렌드 ①: 《러브, 데스 + 로봇》 – 모든 장르가 뒤섞인 미래적 오마주
넷플릭스의 《러브, 데스 + 로봇》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공상과학과 판타지, 호러와 유머가 자유롭게 섞인 하이브리드형 콘텐츠의 정점입니다.
한 편은 블레이드 러너 분위기의 SF, 다음 편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아트 필름, 또 다른 편은 B급 유머로 가득한 픽사풍 애니메이션.
시청자는 어느 하나에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않고, 매 회차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이처럼 작고 짧은 콘텐츠 안에 거대한 장르 믹스를 담아내는 방식은 옴니보어적 감각을 완벽히 구현합니다.
OTT 속 옴니보어 트렌드 ②: 《블랙미러》 – 콘텐츠인가 철학인가, 정의불가의 이야기 구조
또 다른 대표작은 《블랙미러》입니다. 이 시리즈는 에피소드마다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며, SF적 상상력부터 심리 드라마, 스릴러, 블랙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규칙을 조각내고 다시 엮습니다.
어떤 회차는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되다가 기술윤리를 파고들고, 또 어떤 편은 전통적인 미장센을 차용한 호러 장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질문을 던집니다.
시청자는 스스로도 모르게 각 장르 사이를 유영하며, 콘텐츠 자체보다 그 안의 감정과 철학을 소비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OTT 속 옴니보어 트렌드 ③: 글로벌 언어 파괴자들 – 《종이의 집》과 《오징어 게임》
이전에는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콘텐츠는 마니아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스페인어 드라마 《종이의 집》,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콘텐츠임에도 세계적인 흥행을 이루며,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장르도, 언어도 넘나드는 작품을 추천합니다. 스페인 드라마를 본 후 한국 다큐멘터리를 추천받고, 프랑스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어서 시청하게 되는 과정은 바로 옴니보어 시청자만의 세계관을 만들게 됩니다.
옴니보어 트렌드, 어디서 나타나고 있나?
분야 | 옴니보어 트렌드 예시 |
---|---|
음악 | K팝 + 재즈 + 90년대 발라드가 섞인 플레이리스트 |
패션 | 명품 + 키치 소품 + 빈티지 조합 |
푸드 | 프렌치 감성 레스토랑에서 먹는 김치 리조또 |
콘텐츠 | 넷플릭스 다큐 + 틱톡 릴스 + 유튜브 쇼츠를 동시에 소비 |
여행 | 자연 속 캠핑 + 도시 한복판 전시회 투어 |
인테리어 | 이케아 조명 + 앤틱 액자 + 한국 전통 도자기 조합 |
SNS 활용 스타일 | 인스타 감성 캡션 + 밈 이미지 + 브런치풍 브이로그 혼합 |
쇼핑 소비 행태 | 럭셔리 브랜드 구매 + 다이소/알리익스프레스 아이템 혼용 |
마무리
우리는 이제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답다’는 말이 곧, 여러 결이 공존하는 혼종의 미학을 담는 말이 되었죠.
당신이 고른 음악, SNS 피드, 쇼핑 카트, 여행 루트… 그 모든 것이 당신만의 ‘옴니보어적 정체성’입니다.